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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과 번개를 빚는다 _도예가 윤정훈
2018-09-06 09:23:26   조회:317회


천둥과 번개를 빚는다” 

_도예가 윤정훈

 

E.H.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 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썼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미술사를 관통하는 이 짤막한 선언은 그동안 무궁한 예술세계를 접하는 동안에 굳게 믿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큰 그릇의 `관념`을 와장창 깨뜨리고자 노력하는 윤정훈 도예가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말의 파편이 흩어지는 분위기였다.(이기인시인한국문화연수원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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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요즘 근 황은 어떠신지요. 예술가의 일상과 움직임은 작업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윤정훈 : 작년하고 올해는 도예촌장직을 맡다 보니 개인적으로 제 작품은 못했어요. 도예촌 초기에 촌장을 맡았는데 이후로 한 바퀴 돌아서 그 소임을 다시 맡았어요. 두 번씩이나 촌장을 한 사람은 아직 저밖에 없어요. 올해는 촌장으로서 계룡도예촌을 이끄는 일이 먼저였어요. 지금 맡은 소임이 끝나면 그때서야 차분히 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취소한 개인전도 하고 구상만 해놓은 작품들을 하나씩 만들어야죠. 또 여유가 생기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공부도 하고 싶네요.

 

이기인 근자에 있었던 전시회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작가의 산실을 떠난 작품이 그 누군가와 만나는 일은 분명히 다른 세계의 경험일 것입니다.

 

윤정훈 : 지난 6월에는 광주문화회관에서 <계룡산 철화분청사기> 전시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철화분청을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거였어요. 철화분청을 처음 본 분들의 궁금증이 많았어요. 광주에서는 그동안 박지(剝地. 그릇 표면을 긁어내는 기법)나 조화기법(彫花. 선을 새겨서 꽃무늬를 넣는 기법)의 분청사기만 생산돼서 이번의 전시는 신선했을 거예요. 분청사기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기회가 된 거죠. 특히 옛 전통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해석한 다양한 표현에 대해 흥미로워 했어요. 그 덕분인지 지역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죠. 무엇보다도 저는 SNS로 철화분청에 대해 소통하는 이들이 많아서 큰 보람을 느꼈죠.

 

 

이기인선생님의 직함은 예술작업을 펼치는 도예가 외에도 계룡산 철화분청의 명맥을 고뇌하는 도자예술촌장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곳에 일찌감치 공방을 만든 인연이 궁금합니다.

 

윤정훈 : 대전에 전국단위의 도자기 스터디그룹이 있었어요. 도자기를 재료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모임이었죠. 흙과 유약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활용하는 방법까지 공부했어요. 흙이 어떻게 생성되고 도자기 흙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어떤 성질이 필요한지. 유약이 어떤 색을 내고 어떨 때 금이 가고 불투명해지는지 등. 지금껏 경험으로만 존재 했던 것들을 수치화하고 체계화 하는, 말하자면 도자기에 대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했죠. 문제는 이 모임의 구성원들이 작업할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었어요. 남의 집을 빌리거나, 축사를 개조해서 사용하다 보니까 작업의 한계가 있었어요. 작업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던 와중에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곳이 철화분청의 산지였다는 기록을 본거에요. ‘그러면 계룡산유산이 있는 그 품에 들어가 평생을 작업할 공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공감대가 그때 형성 됐죠. 계룡산 도예촌이 위치한 곳은 당시 논밭이었는데, 그 주변 자연환경이 너무도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이곳에 가마터를 세우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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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먹이 추상병.Relation-8.2014


이기인강진의 상감청자, 광주의 청화백자와 더불어 한국도자 3색중 하나인 계룡산의 철화분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철화분청만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인지요.

 

윤정훈 : 고려시대에는 강진, 부안, 무안 등 지정된 곳에서만 도자를 생산했어요. 도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왕실이나 귀족, 불교계 사람들로 한정했죠.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한정된 생산지가 전국으로 확대 돼요.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공공목적의 도자를 만드는 곳을 관요(官窯), 민간에 공급하기 위해 만드는 곳을 민요(民窯)라고 하는데, 민요들이 많이 생성 된 거죠. 이 무렵부터 분청사기가 많이 만들어집니다. 당시에는 분청사기라는 명칭이 없었어요. ‘분청사기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한국미술사의 선각자 고유섭 선생님이 명명하신 거예요. “짙은 색의 바탕 흙 위에 밝은 색의 흙을 분칠하듯 발라서만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죠. 분청사기는 전국에서 생산한 만큼 청자나 백자에 비해 그 스타일도 다양하고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갖게 돼요. 경상도에선 무늬를 새기고 백토를 발라 장식하는 인화분청(印花粉靑), 전라도에선 표면을 칼로 긁어 무늬를 연출하는 박지분청(剝地粉靑), 충청도에선 쇠의 성분을 곱게 갈아 그림을 그리는 철화분청(鐵畵粉靑)으로 유명하죠. 분청사기는 선을 정제해서 썼던 청자나 백자에선 볼 수 없는 자유로운 미감이 있어요. 어느 것이 우수하다 열등하다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청자는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이고, 백자도 분청사기도 마찬가지에요. 각기 다른 시대를 반영 했기에 다른 미감으로 표현된 거죠. 이곳 계룡산의 철화분청은 다른 분청사기에 비해서 문양도 독특하고 과장, 생략, 축소 등이 과감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넓게 보면 20세기의 추상개념과 맞닿아 있죠. 추상의 개념은 유럽에서 성립되었는데 조선시대 우리 조상에게도 추상개념이나 추상의식 같은 미감들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죠.

 

 

이기인 도예작업의 매력은 무엇인지?

 

윤정훈 : 처음에는 흙이 가진 물성에 매료되었죠. 흙은 흙 자체로만 있을 때 어떤 모양으로도 가능해요. 뭉쳐지고 펴지고 늘어나는 흙 본연의 성질을 가소성(可塑性)이라고 하는데, 자연물 중에 흙만큼 가소성이 큰 재료가 없어요. 흙은 손이 닿는 느낌 그대로의 형태를 간직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재료에 비해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죠. 재미있는 것은 이 성질이 불을 통하면 또 다른 성질로 변한다는 거예요. 어떤 변화도 가능했던 흙이 불을 통하면 수천 년이 흘러도 하나의 형태를 온전히 유지한다는 거죠. 쉽게 이야기하면 흙이 불과 만나서 단단한 돌이 되는 거예요.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흙도 있고 물도 있고 불도 있고, 관여하는 것들이 다 자연과 관계가 되어있죠. 무형의 자연물이 내 손을 거쳐 형태를 갖고 사람들이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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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선생님이 작품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윤정훈 : 세상에 작품을 선보이게 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러워져요. 제 생각도 시간이나 세월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잖아요. 눈에 보이는 조형물을 나 아닌 제3자에게 인식 시킨다는 점이 참 어려워요. 옛날 같으면 기호나 심벌을 활용해서 작품의 의도를 유추하게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이후론 미학적 차원에서 모두 뭉개져 버려요. 작가의 주관이나 기준이 제3자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쪽으로 향하기도 해요. 또 작가도 애써 설명하지 않으면 그 의도를 알 수 없죠.

 

초창기 제 작품의 주제는 관계였어요. 너와 나의 관계, 그 추상적인 메시지를 어떤 형태로 구현하는 일은 정말 힘든 작업이에요. 구상의 세계도 분해하고 따지다 보면 결국은 추상으로 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구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자연물만 오롯하게 드러냈을 때 그것이 구상인지. 아니면 응용을 해서 그릇을 만들었을 때 그것이 구상인지, 추상인지. 이런 경계가 애매모호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관계라는 주제를 흙을 매개로 표현했는데 구상은 무엇이고 추상은 무엇인지. 이것은 결국 관념과 관념 사이의 부딪침이라고 생각했어요. 대립하거나 호응하는 것들을 제 의식의 표현으로 놔뒀을 때 이것이 관계함으로써 표현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죠.

 


이기인앞서 얘기했던 흙의 질감들이 조금씩 다르겠죠.

 

윤정훈 : 흙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특색을 가져요. 서산이나 익산 쪽의 흙은 굉장히 굵고 붉은 흙이 많아요. 산간지역의 흙은 굉장히 거칠고 아이보리 색감을 보여주죠. 하나의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점토지역도 위치에 따라 다른 흙을 얻을 수 있어요. 입자가 작을수록 멀리가기 때문에 상류는 거친 질감이고 하류는 고운 질감을 가져요.

 

   

이기인선생님의 작품에는 마치 불에 그을린 어떤 표정들이 낯설지가 않아요. 그 느낌이 왠지 모르게 잊었던 풍경을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혹시 어떤 풍경이 작품에 투영되기도 하는지요.

 

윤정훈 : 어렸을 때 시골에서 마주한 석양, 해가 막 넘어갈 때의 강렬한 느낌들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뜨거운 태양이 지평선으로 떨어지면서 가장 붉은 색을 낼 때, 저녁노을이 그대로 들이치는 마루에서 바라보던 세계가 아직도 눈에 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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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먹이추상문항아리.29x29x37                                                                 철화분청 초문항아리.40x50.분청토.2018



이기인작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윤정훈 : 도자기 작업이라는 것이 순수한 자연물을 활용한 것이라면, 그 자연물을 변수로 사용해선 안 되고, 정직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도자 작업에 있어 편법을 쓰거나 변수를 허용할 때는 사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밖에 안돼요. 도자기는 정말 원리원칙이 아니면 나에게 답을 주지 않을 작업이에요. 도자기는 내 손끝에서 탄생하기에 스스로 정직하고 순수해야 해요. 그렇다면 과연 나는 도자기를 대하면서 그리고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 정직할 수 있었는가, 순수할 수 있었는가하는 반복 되는 의문에 쌓여요. 의문에 쌓인다는 것은 갈등한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나 스스로를 칼 끝 위에 올려놓고 날카롭게 잘라 규정한다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아요. 합당한 생각이나 행동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인지도 아직 자신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강한 혼란이 오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좋은 작업을 해낼 수 있는 고뇌의 과정, 그 한복판에 서있다는 믿음도 갖고 있어요.

 

 

이기인선생님 작품세계에 보다 많은 영향을 준 것들이 있을 듯합니다.

 

윤정훈 :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일 수도 있고 모든 작가들일 수도 있어요. 표현 형식으로 보자면 사물의 가장 기본적 속성으로 회귀하는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받았죠. 전에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뭔가를 덧붙이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더 소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가장 중심의 에센스만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덧붙이는 설명 같은 것은 필요 없지 않을까. 그래서 설명적인 것을 가능하면 쳐내다보니, 그 쳐내진 부분이 결국은 미니멀리즘하고 많이 맞닿은 부분이 있는 거죠. 물질과 마음이 함께 가려면 물질적 형태를 쳐냄과 동시에 내 마음 역시 쳐내야 해요. 그래야만 조화로운 관계 맺음이 가능하죠. 이런 확장된 측면으로 보자면 젠 스타일(Zenstyle)’ 이라고 하는 불교의 선과도 맥을 같이해요.

 

 

 

이기인도자 작업만이 가지는 특별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윤정훈 : 천둥과 번개가 쳐오더라이런 느낌. 그러니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가 가마에서 꺼내는 순간, 내 생각과는 다르게 또 다른 형태로 완성될 때가 있어요. 참 절묘하죠. 가마에 넣기 전에는 내 손끝이 가는대로 만들어 지지만, 가마에 불을 넣는 순간부터 내 의도와 상관없이 변수로만 존재하는 과정이 있어요. 불은 조절할 수 있지만 가마 안에서 도자가 구워지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내 손길이 닿을 수가 없는 거죠. 도자 작업의 많은 부분이 과학화 되었고, 많은 메커니즘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의 결과에는 변수가 개입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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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추상문명. 17x17x44                                                               라쿠추상문항아리.20x20x27

 

이기인선생님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감상 포인트를 하나만 일러 주시죠.

 

윤정훈 :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감상하는 방법은 형태, , 작가의 주관을 보는 거예요. 제 작품은 이 중 도자기의 색을 유심히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기인선생님에게 새로운 세계의 도전이라는 과제는 무엇인가요.

 

윤정훈 그 오랜 시간. 도자기는 사람의 쓰임새에 맞게 적정한 형태와 크기가 최적화 되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도자기에 큰 기형의 변화가 없다는 거죠. 전통적인 형태가 분명 합리적인 측면이 있지만 변화 없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에 괴로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내 시선이나 미감으로 도자기의 변화를 추구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전통과 변화의 경계 혹은 그 간극에 창작의 소스가 있지 않겠나 싶어요. 그 경계나 간극 사이에 나만의 것으로 표현되고 만들어지는 변화가 있는 거죠. 한편으론 제3자에게 내 미감을 강요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즐거운 측면도 있어요. 선험적으로 나갈 수 있는 어떤 개념을 제시해 보면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 기존과 다름을 알려드리면 쉽게 수용해 주시죠.



_윤정훈 도예가

계룡산도예촌 윤정훈 도자공방 운영, 한국공예가회, 한국현대도예가회, 대전도예가회, 한국전업도예가회 회원 / 개인전 2002~2015_윤정훈 도예전 6/ 단체전 2014_계룡산철화분청사기전(국립세종도서관), 계룡산분청사기전(충남도청), 도자 색을 탐하다(영암도기박물관), 한중일공예교류전(고마갤러리, 공주), 공주전통공예가협회전(고마갤러리), 동서도예교류전(김해분청도자관), 계룡산철화분청사기전(구마모토 전통공예관, 일본) 2016_세계철화분청사기전(고마갤러리) 2017_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 ‘Hands + 품다(한국관,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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